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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은평시민신문] <주치의 일기> 누구에게나 위로는 필요하다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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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위로는 필요하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 입력 2020.10.25



환자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사실 갑상선암 진단받았어요. 그런데 수술은 아직 안 했어요. 아직은 암이 작으니 좀 더 기다려서 수술 날짜를 잡아도 된다고 해서, 3개월 후에 다시 초음파 검사 받아보고 결정하기로 했어요.”


시선을 살짝 내리면서 담담한 듯 말씀하셨다.


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무리 갑상선암이 순한 암이라도 해도, 그래도 암인데,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으시겠어요. 크기가 자라는지 아닌지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조금 초조하실 수 있어요.”


순간 그녀가 시선을 들어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다들 갑상선암인데 뭐가 걱정이냐고, 남편도 그건 암도 아니라고 그러고…그러니까 나도 덩달아서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하더라고요. 힘든 암환자도 많은데 나는 암 같지도 않은 암이니까 힘들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어디 큰 병도 아닌데 힘들다 얘기해요. 그런데 어떨 때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어쩌나 싶어요. 이런 걸로 뭔 걱정이냐고 할까봐 속 시원히 말도 못하고 지내고 있네요.”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진료실에서 울었다.


“저, 아유... 죄송해요. 안 울고 싶은데, 아유... 막 울음이 나오네요. 아유... 시간 많이 빼앗아서 죄송해요. 다른 환자들도 많이 기다리실텐데. 암 진단받고 나서 힘들겠다고 위로해주는 얘기 처음 들어봤어요.”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짧디 짧은 나의 위로에 그렇게 큰 눈물이 쏟아질지는 정말 몰랐다.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3개월 동안, 순한 암인데 뭘 그러냐는 얘기 들을까봐 참고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그날 진료실에서 모두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위로받지 못했던 이들의 눈물은, 마치 막혔던 둑이 터지는 것처럼 쏟아진다.


우는 와중에도 다른 환자들 사정까지 걱정하던 그녀는 한참을 울고 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진료실을 나갔다. 그 날 그렇게 속 시원히 울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진료 내용이나 방향에 달라질 것은 없다. 갑상선암, 아직 1cm가 안 되는 작은 크기이고 전이도 없으니 좀 더 기다려 볼 것이다. 오히려 당장 수술하자고 채근하지 않고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그녀는 다행이었다. 3개월 후엔 또 6개월을, 또 1년을 더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암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그녀의 불안이나 서러움은 줄어들 수 있어야 한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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