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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은평시민신문] <주치의 일기> 누구라도 들어오기 편한 의원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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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인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 입력 2020.6.14


제가 일하는 살림의원은 의료협동조합으로 주민들이 돈과 힘을 모아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곳입니다. 누구나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이지요. 처음에 우리가 의원을 만들 때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어야 한다는 강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누구나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은 “누구나 오세요”라고 말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오지 못하게 하는 현실적인 제약, 장벽들이 없어야지요. 그래서 장애인이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살림의원을 처음 만들 때 입지 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휠체어로 거리에서부터 진료실까지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정말 수십 군데를 돌아보며 그런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건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만 있다고 장애인이 편하게 진료 받으러 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휠체어를 타고 검사실도, 화장실도 갈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 건물은 월세가 비쌉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진료비를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적정 진료를 하는 협동조합 의원을 만들려고 하면서 높은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곳에 자리를 잡으니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모차도 실버카(어르신 보행기)도 편하게 올 수 있는 의료기관이 되었습니다. (아, 물론 그래도 월세를 감당하는 것은 버겁습니다.)


갑자기 살림의원을 만들 때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제가 지난주에 다리를 다쳤기 때문입니다. 잘못 넘어져 무릎 측부인대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릎 아래가 바깥쪽으로 꺾이며 넘어진 후부터 통증이 심해지고 관절이 너무 많이 부어올랐기에 ‘반월상 연골이 찢어져서 관절에 피가 차오르나 보다. 아, 관절 붓기 가라앉는 대로 관절경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건가? 정말 너무 골치 아프다. 무릎이 아픈 것보다 골치가 더 아프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당장 수술 받을 형편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또 무릎도 아프더라고요.


다친 다음 날 근처 의료기관에서 MRI를 찍었습니다. 다행히 반월상 연골이나 십자인대는 문제가 없고 측부 인대만 손상되어 있어, 6~8주 정도 스플린트(기브스)하고 지켜보다가 안 되면 수술하자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무릎도 골치도 덜 아파졌습니다. MRI를 찍고 나니 알아서 낫는다고, 저희 의사들끼리는 이것을 ‘MRI 치료’라고 합니다. 죽을만큼 아팠는데 MRI 찍어보니 수술 안 해도 것으로 밝혀지면, 그 즉시 슬슬 덜 아파진다는 거예요.


수술은 안 해도 되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픈 무릎은 남았습니다. 당장 며칠은 다른 의사 선생님이 대진을 해주셨지만 남은 진료는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살림의원은 휠체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었거든요. 그것은 비단 환자들에게뿐 아니라 직원으로서 갑자기 다치게 된 저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려서 의원 안에서 타고 다니고 진료실 안에서도 휠체어에 앉아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화장실을 갈 때도 휠체어로 가고요.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하더라고요. 누구라도 환자로 올 수 있게 장벽을 없앤 의원의 덕을 제가 지금 톡톡히 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나저나 잘 낫고 있으니, 진료실 안에서 제 걱정은 너무 많이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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