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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은평시민신문] <주치의 일기> 의료가 전부가 아닌 왕진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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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클릭👆 [은평시민신문] <주치의 일기> 의료가 전부가 아닌 왕진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 입력 2021.9.7


제가 일하는 살림의원에서는 의사, 간호사, 치료사 들이 함께 왕진을 다니곤 하는데요, 왕진이라는 것이 사실 의료기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루는 은평구 OO동 주민센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양쪽 발의 상처와 궤양이 점점 심해지는데도 병원에 가기가 싫어하시는 분이 있는데 왕진을 와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습니다.


왕진가기로 약속을 잡고 주민센터 직원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병원에 가기 싫다는 분에게 왕진을 나가자면, 그 전에 주민센터 직원의 많은 설득이 있었다는 겁니다. 


“병원에 가기가 정 싫으시면 의사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건 괜찮으세요? 그거라도 제발 좀 합시다.” 


긴 설득이 있어야 겨우 집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집 앞에 가니 소주병이 쌓여 있고, 집 안은 시큼한 음식 냄새와 초파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환자분은 80세의 남성이었는데, 몸무게가 30kg가 채 나가지 않았습니다. 반지하의 하나밖에 없는 방에 얇은 이불을 깔고 주무시는 듯 보였는데, 방바닥에 앉을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났습니다. 이불이 너무 얇아 방바닥에 앉는 충격도 흡수하질 못 했고, 방바닥에 앉는 간단한 동작도 근육이 너무 적어 쿵하고 떨어지다시피 앉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는 방바닥에 앉다가 척추나 골반뼈가 부러질 지경으로 보였습니다. 골다공증이 있는 뼈는 방바닥에 세게 주저앉는 것만으로도 압박골절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발의 상처를 치료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지만, 사실 발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거, 잠자리, 영양, 위생 등등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발의 상처를 정성껏 처치한 후, 주민센터 직원분께 느끼는 바를 말씀드렸습니다. 환경이 달라지지 않으면 상처도 아물지 않을 것 같다는 것과 딱딱한 방바닥과 조명, 근손실이 올 정도의 영양결핍과 위생상태에 대해서요. 


며칠 후 방문하자 방바닥에는 침대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습니다. 서울시의 돌봄 SOS 도움을 받아 집 안팎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영양가 있는 도시락도 잘 배달되어 드시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쌓여있던 소주병이 없어지고 뭔가 생기가 도는 집이 되었습니다. 말씀 한 마디 하기 싫어하시던 분이 “이제 술을 끊을 겁니다” 약속을 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왕진을 하다 보면, 어떤 분들께는 ‘의료가 다가 아니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의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것은 이분들의 건강을 위한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욕창만 해도 그렇습니다. 욕창이 잘 낫기 위해서는 의료·간호도 중요하지만, 기저귀 교체, 자세 변화 같은 돌봄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서로가 역할을 잘 하며 돌볼 때 온전한 돌봄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출처 : 은평시민신문(https://www.e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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