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클릭👆 [은평시민신문] <주치의 일기> 매일매일 역할 놀이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 입력 2020.12.20
우리 진료실에서 침대에 애벌레 인형이 하나 놓여 있다. 아이를 꽤 키운 조합원이 진료실에 오는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쓰라며 가져다주셨다. 신생아의 옆에 길게 놓아 아가들의 키를 재는 용도의 인형인데(맞다, 누구 집에나 있는 바로 그 인형이다!), 애벌레 마디마디가 색색깔이어서 예쁜데다가 만지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나고 질감도 여기저기 달라 아이들을 이목을 집중시켜 달래기에 딱 좋다. 안겨주기에도 알맞은 크기라, 애벌레는 매일 열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진료가 끝나고 진료실을 나가야 할 때, 간혹 애벌레 인형과 함께 집에 가려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어떻게 설득하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인형을 자기 가슴 쪽으로 당기며 아쉬운 표정으로 엄마아빠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는 꼬마 친구에게 다가가서 속삭인다.
“애벌레가 오늘 아파서, 병원에서 조금 더 치료받아야 해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난감해하던 엄마아빠들도 순식간에 이 역할극에 동참한다.
“아유, 저런, 그렇구나, 애벌레야, 얼른 치료받고 잘 나아서 같이 놀자~ 우리 현승이도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자고 얼른 나을게~”
그러면 현승이는 아쉽고 안타까운 얼굴로 애벌레에게 작별을 고하곤 한다.
“애벌레야, 잘 있어, 얼른 나아~”
나는 이 역할극을 너무 좋아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 나타난 진심 서운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보면서 전율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날도 이렇게 답해놓고 곧 나타날 서운한 표정을 기대하면서 키득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똑똑한 신효가 내 역할극에 걸려들지 않고 말꼬리를 잡았다.
“그런데 얘는 왜 항상 여기 있어요? 그럼 애벌레는 맨날 맨날 아파요?”
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그 순간을 임기응변으로 모면했다.
“이제 거의 나았는데, 오늘은 다른 아픈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여기에 있는 거야.”
나의 진지하게 열심인 연기에, 신효는 믿는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응, 그렇구나, 애벌레야, 안녕, 다음에 또 보자~”
나는 이 역할놀이가 정말 재미있는데, 우리 꼬마 친구들, 사실은 의사선생님이랑 놀아주는 거지?
기사 클릭👆 [은평시민신문] <주치의 일기> 매일매일 역할 놀이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 입력 2020.12.20
우리 진료실에서 침대에 애벌레 인형이 하나 놓여 있다. 아이를 꽤 키운 조합원이 진료실에 오는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쓰라며 가져다주셨다. 신생아의 옆에 길게 놓아 아가들의 키를 재는 용도의 인형인데(맞다, 누구 집에나 있는 바로 그 인형이다!), 애벌레 마디마디가 색색깔이어서 예쁜데다가 만지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나고 질감도 여기저기 달라 아이들을 이목을 집중시켜 달래기에 딱 좋다. 안겨주기에도 알맞은 크기라, 애벌레는 매일 열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진료가 끝나고 진료실을 나가야 할 때, 간혹 애벌레 인형과 함께 집에 가려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어떻게 설득하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인형을 자기 가슴 쪽으로 당기며 아쉬운 표정으로 엄마아빠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는 꼬마 친구에게 다가가서 속삭인다.
“애벌레가 오늘 아파서, 병원에서 조금 더 치료받아야 해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난감해하던 엄마아빠들도 순식간에 이 역할극에 동참한다.
“아유, 저런, 그렇구나, 애벌레야, 얼른 치료받고 잘 나아서 같이 놀자~ 우리 현승이도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자고 얼른 나을게~”
그러면 현승이는 아쉽고 안타까운 얼굴로 애벌레에게 작별을 고하곤 한다.
“애벌레야, 잘 있어, 얼른 나아~”
나는 이 역할극을 너무 좋아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 나타난 진심 서운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보면서 전율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날도 이렇게 답해놓고 곧 나타날 서운한 표정을 기대하면서 키득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똑똑한 신효가 내 역할극에 걸려들지 않고 말꼬리를 잡았다.
“그런데 얘는 왜 항상 여기 있어요? 그럼 애벌레는 맨날 맨날 아파요?”
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그 순간을 임기응변으로 모면했다.
“이제 거의 나았는데, 오늘은 다른 아픈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여기에 있는 거야.”
나의 진지하게 열심인 연기에, 신효는 믿는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응, 그렇구나, 애벌레야, 안녕, 다음에 또 보자~”
나는 이 역할놀이가 정말 재미있는데, 우리 꼬마 친구들, 사실은 의사선생님이랑 놀아주는 거지?